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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속을 닮은 쌈지촌!

쌈지촌에서 공룡을 만나다.

쌈지촌에서 불과 십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곳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 천북면 학성리 바닷가는 박동규 위원장이 유년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곳으로 어릴 적부터 공룡 발자국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위원장은 마을로 체험 온 학생들과 이곳을 수차례 찾아가 보여주며 공룡 발자국이라 설명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15년 6월 18일 정풍희(서해삼육중학교) 교사가 이를 발견하여 문화재청에서 현지조사를 하고 문화재 위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최종 확정 지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은 충남에서는 처음 발견된 문화재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천북면 학성리 해변 맨삽지 섬 북쪽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30cm 내외의 원형 공룡 발자국 10여 개가 걸음 행렬을 이루면서 사암과 호층의 성층면 위에 보행렬을 이루면서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의 공룡시대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층이 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지역으로, 상부는 암설류 기원의 각력암과 사암층의 호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부는 전반적인 총리의 횡적인 연속성이 양호한 사암과 이질암의 호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백악기 동안 남한 전 지역이 공룡들의 서식처로 넓게 이용되었음을 알게 한다.

공룡 발자국은 물이 완전히 빠져 나가야 모습을 들어내며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한 시간 남짓이면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물때를 잘 맞춰야 만날 수 있다. 지구에서 번성했던 공룡의 무리가 왜 사라졌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공룡은 발자국 조차 누구에게나 쉽게 내주지 않는 듯하다. 백악기 한반도에 살았던 공룡은 타르보 사우루스, 프로토 케라톱스, 친타오 사우루스, 벨로키 랍토르 등이 있는데 공룡 발자국을 따라가 보며 공룡들의 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겹겹이 층을 이룬 절벽을 따라 백악기 지층을 관찰하며 드넓은 갯벌에서 돌게, 소라, 조개 등을 캐며 맨삽지 섬에서 뜻깊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보령 천북굴구이단지에서 석화구이를 먹으며 겨울 속으로 들어가다.

보령 천북에서 열리는 천북굴축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매년 11월 말경에 열리는 천북굴축제는 보령의 대표 축제 중 하나로 천북지역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천북 굴을 다양한 요리로 맛볼 수 있고 볼거리도 많아서 매년 찾게 된다.

굴을 유난히 좋아하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굴 축제 행사장을 찾았다. 광천 IC에서 나와 30분 정도를 달려 축제장에 도착하니 축제 첫날이어서 그런지 축제 행사장 입구부터 차들이 밀리는 것이 벌써 많은 관광객이 천북 굴을 맛보려 방문한 것 같다.

요즘 천북지역에는 식당뿐 아니라 도로변에 굴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굴구이 단지가 형성되어 1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천북은 굴구이의 원조 지역으로 굴을 채취하던 아낙네들이 날씨가 추워 장작을 피우다가 굴을 그 위에 올려 먹으면서 천북지역 특산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굴구이를 맛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먼저 온 손님들이 굴을 굽고 있어서인지 진한 굴 향기가 내 미각을 자극한다. 커다란 굴을 숯불 위에 올려놓고 굴이 입을 벌리기만을 기다리니 그 시간이 어찌나 긴지...

탁 탁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굴, 마침내 굴이 입을 벌렸다.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갑을 낀 손으로 집어 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굴에 초고추장을 발라 한 입에 꿀꺽... 천북에서 나는 굴은 찌지 않고 쫄깃하여 특히 맛이 좋다.

충청수군의 본영이 자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군항 오천항

천북굴구이단지를 나와 20여 분을 달려 보령 방조제를 지나 오천항으로 가는 길은 너무 아름답다. 구불구불한 길이 왼쪽에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산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바다와 도로변에는 하얗게 꽃이 핀 갈대가 하늘하늘거리고 있어 낭만이 있다.
오천은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로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하는데 주포, 주교, 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오천항 입구에 도달하니 오천항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천항의 오자는 ‘큰 자라 오(鰲)자’로 ‘땅의 형세가 큰 자라 모양 같다. 해서 오자를 쓰며 만의 깊숙이 위치하여 방파제 등 별도 피항 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천혜의 자연적 지리 조건이 좋은 곳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이루어진 선착장에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은 매월 1일과 6일에 오천장이 서는데 장날에 맞추어 방문하면 고깃배에서 금방 내린 각종 신선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키조개는 오천항의 대표 해산물로 전국 생산량의 60% 이상을 출하하며 매년 4~5월경 키조개 축제도 개최하고 있다. 사계절 내내 색깔이 다른 오천항은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고 조용해서 고향 같은 평온함을 느낀다. 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 위로 갈매기들의 날개짓을 지켜보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인근 충청수영성 성곽 위로 발걸음을 옮긴다.

해안방어의 요충지 충청수영성

그리 높지 않은 산 위로 길게 쌓아올린 성벽은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으로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돌로 높이 쌓아 올린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 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 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四方)에 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섭루(待燮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바다와 면해 있는 성곽을 걷고 있노라니 옛날 우리 선조들이 항을 지키기 위해 함성을 지르며 병사들을 호령하던 장군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는 오천항과 붉은 석양을 등지며 귀항하는 어선.
그 어선 위로 날아오는 갈매기 떼는 한 폭의 그림 같다.